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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교통신호의 역사                                                                              이명우

1970년초의 교통현황 

 

1971년 2월 내가 한양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방송기자재를 수입  오퍼하는 한국전기 주식회사 (현재의 한국전기교통주식회사의 전신임)에 입사하여 수출입 오퍼 실무를  배우는 신입 사원 시절에 회사가 서울시 경찰국에 CCTV 시스템을 서울시내 10개소에  처음설치하는 공사 를 하게됨으로서 회사와 내가 교통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한국전기(주)에서는 영국 PYE TVT Ltd.의 방송용 카메라  및 미국 Ampex사의 녹화기등을 KBS 및 MBC에 납품하고 있었는데 PYE TVT사에서  교통상황감시에 사용하는 옥외형 CCTV 카메라를 전세계에 공급하고 있었으므로 선견지명과 탁월한 영업수완이 있는 황태영사장이 서울시 경찰국에 서울시내 주요 교차로의 교통상황 감시에 첨단 CCTV 카메라 시스템을 사용할 것을 권유하여 1971년에 서울시 경찰국에서 이 사업을 착수하였다. 

 

서울시 경찰국에서는 서울시내 10개 주요 교차로(시간당 2만대 통과 교통량)에 CCTV 카메라 를 설치하고 경찰국 3층에 교통정보  통제실(TV TRAFFIC INFORMATION CENTER)에  19" Color Monitor 10대와 21" 대형 Color Monitor 2대를 갖춘 현대적인 설비를  1971년 8월20일에 착공하여 그해 10월 21일에 준공하였다.


                       

준공당시의 교통정보 통제실과 CCTV Monitor

 

나는 이때 회사 신입사원으로서 서울시내 주요 10개소의 교차로 (신세계백화점앞, 서울역, 시청, 광화문, 중앙청, 을지로6가,  광교, 화신백화점앞, 청계2가, 청계6가)에  설치된 12M 철주에 CCTV 카메라를 설치하고 비디오 케이블을 서울시경찰국(당시는 남대문  근처)까지 도로변에 가공으로 설치하는 노상작업과 통제실의 Monitor를 설치하는 공사에 참여하여 CCTV 공사기술을  습득하였으며 이공사는 회사의 이봉우부장, 안성균과장이 주도하였다.

 

그당시 서울시경의 교통정보통제실의 운영상황과 설비는 최첨단 설비이며 지금으로  보면 영상검지기등 각종 첨단센서와 컴퓨터 시스템을 갖춘 신 전자교통신호 시스템  설치공사와 맞먹는 획기적인 사업이었다. 

 

한국전기(주)는 서울시 경찰국의 교통통제용 CCTV 공사를 한 인연 때문에  차후 교통신호등과 신호제어기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교통신호기기 업체로 성장하게 된다.

CCTV System을 갖춘 서울시 경찰국의 교통정보 통제실의 준공후 당시 CCTV Camera System을 공급한 영국 PYE TVT사에서 서울시 경찰국 교통관련 책임자(경비과장 및 교통계장 등)를 선진국의 교통시설을 견학토록 초청하였으며 - 한국전기 황사장의 적극적인 노력의  결과임 - 이로인하여 이분들이 미국, 유럽 및 일본등 선진국 대도시의 최신  교통신호 시스템과 교통 신호기기등을 최초로 시찰케 되었습니다.

 

1970년초 당시 서울시를 비롯하여 5개 대도시는 전반적인 국내 산업발전과 도시인구의 집중 및 차량의 증가로 도시 교통난이 심각하게 대두되던 시점이었으나 교통시설은  매우 낙후되어 있어 주요 교차로의 교통정체와 차량 충돌사고가 매우 심각한 상태이었습니다.

 

차량증가에따라 도심지의 간선도로상의 교차로에서 사고가 빈발하게 됨으로서 교차로 신호제어를 위하여 신호등과 신호제어기가  등장한 것은 6.25전란후 1950년대  후반기부터 미국의 무상지원에 따라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시등 큰도시에 설치된  미국제품의 신호등과 신호제어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1960년대에 자동차의 증가에 따른 교차로의 교통소통과 안전을 위해 교통신호기기의 설치 수요가 증가하자 국내 업체에 의해 미국제품을 수입하여 설치하였고 1970년초에는 미국제 부품 으로 조립된 교통신호제어기와 국산 신호등이 교차로에  설치되기 시작하였다. 

 

이때에 사용하던 교통신호등과 신호제어기는 - 내가 1972년도에 교통신호기기를 개발하게 되면서 알게된 사실임 - 대부분 미국제품의 부품을 사용한 조립제품이었으나  일부 제품은 미국제품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참고로 당시의 신호기기의 제품상태 및 기술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호제어기 

 

정해진 현시 신호(Traffic signal : 청색, 황색, 적색)를 순차적으로 표출시키기 위하여 Timer와 미국 Eagle Signal Company의 Drum Select Switch를 사용하였는데  이 신호제어기는 50년대 초기 교통신호제어기입니다.

 

신호제어기에 사용하는   Drum Switch는   모양이 옥수수와 같이  생겨서  회전하는  Switch  Frame  (이  Frame을   옥수수대로 불렀는데   이제품의  외형이  옥수수와   같이 생겼으며 Frame에 옥수수 알겡이처럼 사각형 Plastic block이 박혀 있었으며 이 Block을 각신호등의 현시 신호순서로 현시 시간간격만큼 빼거나 박아서 사용함)위에 설치된 스위치 접점과 연결된 스프링 바(Spring Bar)가 Switch Frame에 부착되어 회전하면서 Block   이 빠진데를 통과시 신호등 전기회로가 ON되어 신호등이 점등되도록 하며 Block이 박혀있는 데를  통과시는 전기회로가 Off 되어 신호등이 꺼지도록 하였다.


70년대 후반부터는  Drum Select Switch대신 사용하기 편리하고 국산개발 제품인 전화  교환기에 사용되는 Line Selector Switch를 채택하여 개발된 국산 교통신호제어기가  사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신호등

 

50년대의 신호등은 미국제품으로서 다이케스팅된 철제품에 녹색 또는 회색으로 도장된 신호등  함체에  반사경과   유리로 주조된  렌즈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100VAC의  100Watt(차량등) 및 60Watt(보행등) 전구가 있는 구조이었다.

60년대에는 철판을 판금하여 만든 신호등 함체에 흑색으로 도장한 국산 신호등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때도 신호등전구는 100VAC의 100Watt 및 60Watt의 백열전구를 사용하였다

 

현대적인 교통신호등의 등장 

 

1973년초 회사의 황사장이 나를 불러서 서울시경으로부터 최신의 교통신호등과 교통신호 제어기를 개발하여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면서 나에게 교통신호등과 신호제어기를 개발하여 보지 않겠느냐고 내 의중을 물어보기에 당시에는 혈기왕성하고 무엇이든지  도전하고 싶은 욕망이 충천할때라 소신껏 개발하여 보겠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황사장은 교통신호기기 업체인 대한신호 주식회사에 가서 Philips사 신호등을 찾아와서 국산화 개발을 검토하고 신호제어기는 최신 전자부품을 응용하여 국산화 개발토록 지시하였다. 

 

사실 이때 안 것이었지만 서울시경의 교통관련 책임자들이 1971년말  유럽시찰시 네덜란드 Philips사의 최첨단 교통신호등과 신호제어기를 보고 한국의 낙후된 교통신호시설을 개선코저 한국전기 황사장에게 신호등 Sample 구입을 요청하였으며 이러한 사유로   Philips사 신호등 한 개가 수입되어 이를 서울시경에 무상 제공된바 있었다.

 

서울시경에서는 당시 서울시에서 제일큰  대한신호 주식회사에 Philips사  최신형 플라스틱 교통신호등 Sample을 주고 국산화 개발을  하도록 권유하였는데 당시 대한신호(주)가   1년  가까이 개발을 못하고 있는 처지였습니다.


서울시경에서는 대한신호(주)에서 개발을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당시 자금력이  든든한 한국 전기(주) 황사장에게 Philips사의 플라스틱 신호등의 국산화 개발을 권유하게  된 것이며 국산화 개발이 성공적으로 된다면 서울시경에서 적극적으로 구매하여 주겠다고  약속하게 된 것이었다.

 

내가 황사장의 지시를 받고 대한신호(주)에 Philips사의 교통신호등을 인수하러  갔는데 이때 대한신호의 안사장은 내가 Philips사 교통신호등을 찾으로 왔다고 하자 골치거리를 떠넘기는 표정과 말투로 선뜻  직원에게 창고에 있는 신호등을 찾아주라고  지시하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안사장 입장에서는 시경에서 신호등을 개발 안한다고 독촉이 심하였고 신호등의 Plastic 금형등을 개발할 자금은 없고 아주 난처한 입장이었던 것 같다. 

 

Philips사 신호등 Sample을 인수하여 온 후  한국전기 황사장이 나에게  교통신호기기 개발을 책임지도록 지시하였으며 모든 지원을 전폭적으로 지원하여 주기로 약속하였다. 사실 이때 한국전기 회사에는 전무, 이사, 부장 및 과장이 다 있었는데 회사 신입사원인 나에게 감당키 어려운 과업을 맡긴 바람에 책임을 완수코저 혼자서  무려 6개월간 불철주야로 교통신호등과 신호제어기의 개발에 몰두하게 되었다. 

 

신호등의 개발은 전부 나혼자의 힘으로 Plastic 함체 금형, 반사경 및  기타 부속품을 국산화 개발하였으며 신호제어기는  Timer회로를 갖춘 전자회로와  미국 Eagle사의 Drum Selector switch를 이용한 전자식 신호등 구동회로를 설계하고 조립 제작하였다. 

 

6개월후 12" 차량신호등의 Plastic 함체 및 렌즈 금형이 개발  완료하여 시제품을 사출하였으며  알미늄 반사경과 렌즈 고무박킹도 개발완료하여 시제품이 만들어졌다. 모든 부품을 조립하여 신호등을  완성한후 점등을 한 결과  Philips사 Orignal제품에 비하여 손색이 없었으며 밝기도 똑같은 상태이어서 일단은 개발이 성공한것이다. 이 신호등은 Philips사 제품과 같이 초소형의 Hologen Lamp를 사용하였다.

 

       

 

                     최초 개발한 Plastic 신호등                                          Drum switch로 개발한 신호제어기

 

즉시 시경의 교통관계 책임자에게 개발된 신제품을 선보이자 아주 만족해하며 시경국장에게 보고한후 바로 광화문 사거리의 차량신호등 4대 모두를 개발된 신제품으로 교체하도록 하였다. 이때가 1973년 10월 초순경이였다.

 

나는 개발된 신제품 신호등 (12" 3색 차량 신호등) 12대와 신호제어기 1대를 생산하고 광화문 사거리의 구형 신호등과 제어기를 교체하는 공사까지 일주일간 철야  작업으로 완료 하였다. 신호등과 제어기의 교체는 일요일 낮에 하였으며 밤 9시쯤 회사  사장 및 직원들과 시경 교통관련 책임자 (경무과장, 시설계장 등)의 입회하에 점등식을 가졌다.

 

한국전기(주)는 1974년 봄부터 서울시내 사대문 안의 50개 교차로의 모든 신호등을  개발 신제품인 Plastic 교통신호등으로 교체하는 공사를 착수하였으며 이후 교통신호기기 전문업체로서 전국 주요도시의 교통신호기기 공사를 독점적으로 하게되었다. 

 


 

1973년말에 새로설치된 광화문 교차로

 

1973년말부터 나는 회사의 교통신호사업 책임자로서 교통신호 기기의 개발 (74년도 에는 8" 신호등과 보 행등도 개발하였음) 과 생산 및 공사등을 전담하는 팀장의 역할 을 3년간 하게 되었다.

한국전기(주)의 교통 신호기기 신제품 개발 과 교통사업 진출에 위기의식을 가진 기존의 교통신호 업체들중 몆개 업체는 75년이후  Plastic 교통신호등을 개발하여 한국전기(주) 와 경쟁을 하게되었으나  선발주자인 한국전기의 독주를 막지못하는 입장 이었으며 한국전기는  1981년  서울시에 컴퓨터에 의한 전자교통신호 시스템(Computerized Traffic Signal Control System)이 등장할 때까지 국내 제일의 교통신호 전문업체로 성장하였다.

 
컴퓨터에의한 전자교통신호체제의 도입

 

교통관제시스템의 역사 

 

도심지내의 각교차로의 교통신호등을  독립적으로 작동하게 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연계하여 교통소통이 원활하도록 제어하는 것을 교통관제시스템(Traffic Control System)이라고 하는데 최초로 교통관제시스템 작업은 1917년 미국의 솔트레이크시에서 6개의  교차로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조절하게 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이후 1922년  텍사스  휴스톤시에서 12개교차로를  중앙관제센타에서  신호를 조정하였으며 1950년말까지 100여개의 도시가 교통관제시스템을 설치하였다. 1963년 캐나다 토론토시에서 20개의  교차로를 제어하는데 처음으로  Digital 전자계산기가 사용되었으며 10년후인 1973년에는 855개 교차로로 확장되었다. 1964년 미국 켈리포니아  산호세시에서부터 본격적인 교통제어 개념을  도입한 Computerized Traffic Signal Control System이 발달하게 되었다. 

 

1975년 서울시경에서 교통관제시스템을 도입하고자 검토할 당시 서울시경에서 Computerized Traffic Signal Control  System을 전자교통신호체제(電子交通信護體制)라고 호칭하였는데 이는 당시 정부기관에서  Computer를 전자계산기(電子計算機)라고 주로  호칭하였기 때문에 교통신호시스템 앞에 전자(電子)를 붙이고 System을 체제(體制)라고 하여 합성하여  쓰게 된 것이며 일본에서 주로 사용하는 교통관제(交通管制)시스템이라는 용어와 차별성을 갖게하는 의도도 있었다.

 

전자교통신호체제 도입 추진 

 

6.25동란이 일어나던 1950년에 인구 160만이었던 서울시가 제3공화국에 의하여  주도된 산업화 정책에따라 1970년대 초반부터 서울시의 인구는 400만이 넘고 이에 따라 교통수단과 교통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로 서울시내는 교통지옥이라는 말이 생길정도로 시내 사대문 안의 각교차로와 중요 간선도로(종로, 청계로, 을지로, 퇴계로등)의 교통상황은 하루종일 교통정체현상이 발생되었으며 매년 악화일로로 치닺게 되었다. 

 

1975년부터 서울시경은 주요간선도로의 교차로 신호기를 컴퓨터에 의하여 자동조절하여 교통 소통을 원활하게하는 전자교통신호시스템 (Computerized Traffic Signal Control System)을 선진국으로부터 도입하고자 계획을 수립하고 기술현황과 예산등을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한국전기에서 교통사업에 열중하던 나는 교통신호 시스템이 사회에 이바지하는 공익성과 중요성을 알게되었고 또한 교통신호 시스템의 컴퓨터화 신기술을 습득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컴퓨터로 제어하는 교통신호의 기술자료를 수집하고 공부하게 되었다.

 

1953년부터 전화기, 전화교환기, 통신기기 및 철도신호기기를 생산하던  동양정밀공업 주식 회사(Oriental Precision Co., Ltd.: 이하 OPC라 부른다)는 1970년초부터  철도신호 시스템의 기술제공 업체인 일본의 철도신호와 교통신호 Maker인  교산세삭소(京三製作所)로부터 교통신호사업의 중요성과 사업착수를 권유받고  교통신호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나는 1975년 10월 OPC의 입사권유로 OPC 1공장 기술과장으로 자리를  옮겨서 철도신호 기술 업무를 담당하며 내고유 분야인 교통신호  분야를 개척하게 되었다. 당시 OPC  1공장은 철도 신호기기(철도신호등, Relay, 전철기, 철도신호제어 시스템등)와 콘덴서를 생산하고 있었으며 교통신호에 경험이 있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이때 공장장 황상렬이사는 전화교환기 사업부문에서 근무하다 이사로 승진한 분이었고 부장은 철도청 신호분야의 기술자로서  OPC가 영입한 분이였다.

 

서울시경에서는 1975년부터 전자교통신호 시스템 도입을 위하여 외국회사의  기술내용과 소요 예산등을 조사하였으며 이때 외국의 여러 유명 Maker들은 국내 전문업체와 협력관계를 갖고 사업획득을 위하여 막대한 노력을 하였다. 

 

OPC는 철도신호로 기술제휴업체인 일본 교산세삭소와 협력하였고 같은 철도신호기기 제작업체인  금성통신공업 주식회사(LG산전의  전신임)는  일본의  OMRON사,  한국전기(주)는  미국 Eagle Signal사, 코오롱 상사는 네델란드 Philips사와 협력관계를 맺고  서울시 전자교통신호 시스템 사업을  추진하였다.

 

1975년부터 서울시 경찰국과 서울시 교통국간의 사업주도권 다툼으로  사업주체가 확정되지 않다가 1977년초 서울시장의 결정에 의하여 사업발주는 서울시 관광운수국에서  하고 운영은 경찰국이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서 본격적인 예산작업과 사업범위를 검토케 되었다.

이때 서울시 관광운수국은 전자교통신호시스템 구축을 위한 기본설계 작업, 참여 업체의 기술 및 사업능력 심사, 사업자 선정등의 용역을 한국과학기술원(KIST)에 위탁하였다.   이것은  전자교통신호 시스템을 국내에서 처음하는 Project이며 이 분야에 전공한 사람도 없고 경험있는 전문가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컴퓨터  시스템분야에 가장  전문가가 많은 KIST에 의뢰하게 된 것이다.

 

전자교통신호체제 도입 

 

1978년 봄에 서울시는 도심권 45개 교차로에 대한 전자교통 신호시스템 구축을 위한 사업자 선정을 위해 참여 희망업체에 기술제안서 및 총공사 예정가격을 6월말까지  제출토록 공고하였으며 이때 OPC, 금성통신, 코오롱 및 한국전기등이 참여하였다.

 

나는 OPC에서 서울시 전자교통 신호시스템을 수주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1977년  봄에 일본 교산세삭소에서 일주일간 전자교통 신호에 대한 기술교육을 받았으며 도쿄시의 교통시설과 경시청내에 있는 교통관제 센타도 견학하였다. 이후 나는 서울시 Project 수주를 위하여 OPC 황이사와 함께 서울시 경찰국과 교통국 및 KIST등을 연일 방문하고 새로운 전자교통신호 시스템을 소개하며 제안서와 기술자료등을 제출하는 일로 1998년 가을까지 바쁜  나날을 보냈다.

 

서울시는 OPC등 4개업체가 제출한 기술제안서와 총공사비를 검토키 위하여 KIST의 박사들과 일부 대학교 교수 및 서울시 책임자로 구성된 평가심의 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이 위원회에서 업체시공 능력과 해외 기술제공업체의 기술력을 평가하고 외국  Maker의 기술평가를 위해 입찰에 참여한 해외 Maker의 공장과 전자교통신호시스템을 설치한 도시를  순방 시찰하였다. 

 

OPC의 집요하고 박력있는 영업활동과 충실한 기술제안서 덕분에 평가심위  위원회의 평가결과 업체선정후보 1위로 선정(2위는 금성통신)되었으나  일본의 전자교통 신호시스템이  미국의 전자교통 신호시스템보다 기술력이 다소  뒤떨어진다는 평가위원의 주장으로  OPC가 미국  Eagle Signal사의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으로 절충하고  한국전자기술연구소(KIET)가 실시설계 및 중앙장치 Software개발과 공사감리를  하는 것으로 하여 그해 12월에 서울시와  OPC 및 KIET가 공동 수의계약을 하게 되었다. 

 

KIET가 공동수의 계약자로 된 것은 전자교통신호시스템의 핵심기술을  보유코저 하는 KIST의 설득력있는 주장과 상공부의 국산화 개발정책 때문에 KIST산하의 연구소인 KIET가  이를 담당하게 되었으며 이때 서울시 전자교통 신호시스템 Project의 KIET 총책임자는  부소장 이용태박사(현 삼보컴퓨터 회장)이며 실무 책임자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서강대학교 과학기술 연구소 박병소박사(현 서강대 교수)이었다.


   1978년에 시작한 1차년도의 사업은 다음과 같다.

 

   착공 및 준공 연월일

: 1978.12.29 ∼ 1981. 2.25 

    총사업 공사비

: 14억2300만원 (KIET 3억5760만원, OPC 9억5350만원) 

    사 업 범 위



: - 교통관제센타 상황판 및 컴퓨터 시스템 1식 
 
- 전자신호제어기 설치 도심권 45개 교차로 
 
- 가변표지판 10개소 
 
- CCTV 카메라 10개소 

     업 무 분 담


: KIET - 기본 시스템 설계, 중앙장치 Software 개발, 컴퓨터 Data
             base 작성, 공사감리
 
  OPC - 전자교통신호시스템 기자제 도입, 설치공사 

     외국기자재 도입내용



: 전자교통신호제어기- 미국 Eagle Signal Corp. 
  
교통상황판 - 일본 KCC Co. Ltd.  
  
Mini-computer - 미국 Data General Corp. 
 

 

나는 OPC에서 전자 교통 신호시스템 설치공사의 기술책임 자로 설치공사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서울시와 계약후 KIET의 박병소박사외 4명의 연구원과 같이 미국 Eagle Signal Corp.에서 2주간 전자교통신호시스템 (Computerized Traffic Signal Control System) 에 대한 기술교육을 받았다.

 

 






 

미국에서 연수받은 전자신호 개발 Team

박병소박사(죄측) 및 본인(우측)

 

이때는 한국내에서 전자교통 신호시스템에 경험이 있는 사람이 전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연수한 6명이 학계 및 업계의 최초 전문가가 되었다.

 

미국에서 돌아온 후 나는 OPC의 기술책임자로서 시스템 도입과 설치를위하여  KIET의 박병소 박사 Team과 호흡을 맞추어 시스템 실시설계, 기기도입 및 공사와  가동에 전력을 경주하였다. 

 

1980년초에 OPC에서는 본격적인  전자교통 신호시스템 설치를 위하여 특별  Taskforce Team인 전자교통 신호사업단(단장: 연구소장, 부단장: 연구소 정계택부장, 이명우과장,  양계훈, 김승환,김기룡 기사,고재우연구원 및 기술요원 10명)을 구성하여 서울시내 45개 교차로에 설치된  낡은 구형 신호 제어기를 Eagle Signal의 전자교통 신호제어기로 교체설치 하는 공사와 가변전광판 10개소의 설치 및 관제센타의 컴퓨터 시스템, 교통상황판을 설치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당시 시내 현장공사는 주로  밤12시 이후부터 새벽 7시까지 하였는데  나를 비롯하여 Team원 전체가 혼연 일치되어 거의 1년간 공사현장과 시경 관제센타 (현재의 종로구청  민원실 건물 4층) 및 사업단 현장사무소(명동에 있는 건물 3층)에서 지내게 되었다. 전자교통 신호시스템 사업은 서울시경의 최대관심 사업이었으며 마찬가지로 OPC에서도 중요관심 사업이었기에 공사현장에 OPC사장 및 회장도 야간공사 시찰을 하였으며 시경 교통과장도 수시로 현장시찰을 하였다. 

 

  
                   Eagle Signal사의 NC-100 전자신호제어기

     
                      제어기 함체

  
전자교통신호체제 도입 이후 

 

1980년말까지 2년에 걸친 전자교통 신호시스템 도입과 설치공사가 마무리되고 1981년 2월까지 시험가동을 거친후 3월 중순경에 서울시장, 경찰국장, KIET 소장, OPC회장  및 관계 내빈이 다수 참석한 성대한 준공식을 치루고 정식으로 전자교통신호체제 운영에 들어갔다.

 

  

    

1982년 3월 준공당시의 교통관제센타 상황실 

 

초기 전자교통 신호시스템은 4대문 안의 종로, 을지로, 청계로, 퇴계로 및 율곡로와 광화문에서 서울역을 잇는 주요 6개 간선도로가 교차하는 45개소에의 교차로에 전자교통신호기를 설치하고 이를 전화선로를 통하여 On-line으로 관제센타의 Host computer가  지역 전자신호제어기의 신호현시를 직접 제어토록 하였다.

 

주요 교차로에 설치된 89개의 Loop 차량검지기에서 감지되는 차량검출 신호를  제어기를 통하여 직접 Host computer로 전송하였으며 Host computer는 이 신호를 받아  5분간 지점 교통량과 평균속도 및 점유율을 산출하여 Data base화 하였으며 이 Data는 Host computer가 신호  현시를 조정하는데 사용하였다.

 

Host computer는 전자교통신호 체제내의 각 교차로 소통상태가 원활화하도록  하기 위하여 45개 교차로를 간선도로별로 Group화(종로, 청계로, 을지로, 퇴계로, 율곡로  및 광화문-서울역 구간)하고 Group내의 교차로  교통신호가 서로 Co-ordination을  이룰수 있도록 TOD(Time  of Day) Mode 및 Response Mode로 신호현시를 조정 운영하였다.

 

그러나 Traffic Response Mode는 설치검지기의 부족 및 서울시경 운영요원의 시스템 운영미숙으로 별로 사용치 못하고 주로 TOD Mode(1일 3∼5개 Pattern)로 운영하였다. 이때 TOD  Mode를 운영키 위하여  사용된  Program은 FORTRAN  Ⅳ language로  작성된  PRCAL (Progression Calculation) 및 TSPLT(Time Space Plot)등이었다.

 

전자교통신호체제 도입 6개월후 서울시경에 의하여 방송 및 신분에 발표된  교통소통 개선효과는 설치전 상태보다 약 35%의 교통소통 효과가 있음을 각종 측정 Data와 함께 제시하여 정부와 여론에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고 이로 인하여 연차적 확대사업에  필요한 예산획득이 무리없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서울시경에서 한국전자 기술연구소의 연구보고서를 토대로 발표된 개선효과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행속도 개선(1구간) : 설치전 17Km/h  설치후 22.9Km/h  향상율 35% 
   신호대기회수 (1구간) : 설치전 4.3회   설치후 2.8회     향상율 35% 
   신호대기시간 (1구간) : 설치전 59초    설치후 24초      향상율 59% 
   주  행  시  간 (1구간) : 설치전 10분    설치후 6분11초   향상율 39% 
   년간 차량 연료비 절약 : 약 160억원(전자신호 설치구간) 

 

이러한 정부공인 연구기관인 서울시경 및 KIET의  개선효과 발표는 서울시 및  부산시등 5개 대도시에 많은 영향을 주어  서울시에 이어 부산시도 1984년부터  전자교통신호체제 도입을 시작하게 되고  대구, 인천 광주, 대전시등이 뒤를 이어 순차적으로 전자교통신호체제를 도입하게 된다.

서울시의 전자교통신호사업은 1978년 1차 사업을 시작으로 1993년 도로교통안전협회의 교통과학연구소에 의하여 신전자교통신호시스템(신신호시스템)을 연구하기까지  13차(1992년)에  걸쳐 약 1400개 교차로로 확장 설치하여 운영되었다.


글쓴이 약력

 

성명 : 이명우

1945년생

경동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과 졸업(학사)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경영학과 졸업(석사)

한국전기(주)  교통신호기기 개발/생산/영업 담당

동양정밀공업(주) 교통신호시스템 기술부장/연구소 부장

대명전자산업(주) 대표이사

(주)아이티에스21 대표이사